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3월 14일 약목면 약목 시장에서 김익식(金益時) 등과 함께 3.1운동 계획을 추진했다. 3월 11일 안도수(安道秀)가 칠곡군 북삼면(北三面) 숭오동(崇烏洞) 김익주(金益周) 집에서 형(兄) 김익시에게 “대구 기타 각 지방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약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세계 각국의 강화회의에서 조선도 독립하게 될 것이라 한다. 이때 독립만세를 외쳐야 할 것이다”라며 만세운동 실행을 권유했다. 이에 찬성한 김익시는 다음날 3월 12일 밤 복성동(福星洞)의 기독교 교회와 자택에서 남계동(南溪洞)의 최진화・박상하(朴相夏)・한종호(韓鍾浩), 동안동의 배일언(裵日彦)에게 안도수의 뜻을 전하였다. 이에 최진화 등은 3월 14일 약목 장날 시장에서 숭오동 기독교 신자들과 합동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약목헌병주재소 헌병들에게 이 계획이 사전에 알려져 체포되었다.
최진화는 만세운동 추진으로 약목헌병주재소 헌병에 체포되어 1919년 3월 21일 왜관헌병분견소에 구류되었다. 같은 해 4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였다. 5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구감옥에서 출옥했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대구복심법원:1919. 4. 9, 5. 6)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390~3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