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3월 중순 강원도 (江原道) 인제군청 (麟蹄郡廳) 의 고원 (雇員) 으로 재직중 춘천 (春川) 감리교회 (監理敎會) 목사 이병찬 (李柄燦) 으로부터 독립선언서 수십매를 인수하여 귀향 (歸鄕) 한 후 3월 29일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자신은 인제군 (麟蹄郡) 인제면 내 (麟蹄面內) , 이종근 (李鍾根) 은 합강리 (合江里) , 심한구 (沈漢龜) 는 덕산리 (德山里) , 이성종 (李聲鍾) 은 보통학교를 각각 담당, 군중동원을 책임맡아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한편 시위참여를 촉구하는 선전문을 각지의 요소에 부착하는 등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중 3월 27일 피체 (被逮) 되어 징역 5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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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강원도 인제(麟蹄) 사람이다.
1919년 3월 중순 당시 인제군청에 재직 중 춘천(春川)에 있는 감리교회 목사 이병찬(李柄燦)으로부터 독립선언문 수십 매를 건네 받고 3월 29일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그는 인제군 인제읍(麟蹄邑)내를, 이종근(李鍾根)은 합강리(合江里), 심한구(沈漢龜)는 덕산리(德山里), 이성종(李聲鍾)은 보통학교를 각각 담당, 군중동원의 책임을 맡아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는 한편 시위참여를 촉구하는 선전문을 각지에 붙이는 등 준비를 하다가 3월 27일 밤 사전에 발각되어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그리하여 같은 해 6월 2일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태백항일사(조동걸, 1977. 5. 1) 120·121면
- 인제군지(인제군지편찬위원회, 1980. 5. 20) 18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558·5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