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43년 2월경 일본군의 패전 및 독립에 관한 시국담을 논하는 등 항일의식을 고취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는 일제의 침략전쟁이 극에 달하는 가운데, 최홍준(崔弘俊)과 함께 당시의 국제 정세를 주의깊게 전망하면서 독립운동 방도를 모색해 갔다. 이때 이들은 “독일군이 일단 점령한 소련의 스탈린그라드도 슬라브 민족의 끈기와 동장군(冬將軍)의 추위 때문에 소련군에게 탈환되었다고 하는 바,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패전하면 당연히 동아(東亞)의 전국(戰局)에도 영향을 끼쳐 일본군도 단독으로는 전쟁을 계속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패전에 이를 것이며, 그 결과는 반추축(反樞軸) 측이 추축국을 처리하게 되며 남방 방면은 미국이 지배하고 유럽은 영국이 지배하고 일본·호주 및 중국은 소련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조선도 독립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므로 우리는 그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 민족의 문화향상과 경제력의 충실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은석은 이를 위해 동지 포섭에 힘을 쏟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어 징역 4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1944. 1. 3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607∼16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