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남 영흥(永興) 사람이다.
1930년 영흥농민조합(永興農民組合)에 참가하여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영흥농민조합은 1930년 12월 영흥농민동맹(永興農民同盟)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순무산농민의 단결체를 목표로 발전·개편한 농민운동단체로서, 농민운동에 국한하지 않고 청년부·부인부·소작부·농업노동자부·소년부들의 부서를 설치하면서 폭넓게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때 청년부의 강령을 보면, 정치적 자유의 획득·계급적 해방·반제운동·적색테러단의 조직·군사적 훈련 등으로 강력한 투쟁방침을 제시하였다. 이후 영흥농민조합은 계속 조직이 확대되어 1931년 10월 현재 9개의 면단위 지부와 그 아래 170여 개의 반(班) 조직을 설치하며 회원이 1만 2천여 명에 달할 정도로 발달하였다.
그런데 1931년 10월 시위 도중 조합원이 일경에 쏜 총에 맞아 사망하자 대규모의 시위를 벌이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핵심인물과 조직원이 대거 붙잡히는 바람에 영흥농민조합은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진기섭을 비롯한 인사들에 의해 재건운동은 계속되었다. 1932년 덕흥지부회(德興支部會)가 설치되기도 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중지되었다가 1932년 11월에 영흥농민조합재건위원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불꽃』·『뉴스』등을 발행하면서 선전·선동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는 1932년 12월 2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1933년 2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34년 5월 23일 고문의 여독으로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249·256면
- 사상휘보(1935. 9월) 제4호 32∼54면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8집 223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