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주창엽은 1928년 2월 1일 안병진·박은혁·김연화(金蓮華) 등 30여 명과 함께 신의주청년동맹을 조직하기로 결정하고 준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월 3일 준비위원들은 동 청년동맹의 발기취지서·선언·강령·규약 등을 제공한 기초위원으로 안병진·김연화·이원식(李元植)을 선임하였다. 2월 18일에 신의주공회당에서 동 청년동맹 창립대회를 열고, 집행위원장에 안병진을 선출하였다. 이후 발기선언 및 강령이 불온하다고 여긴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아오다가 8월 23일 일제의 관련자 일제 검거로 체포되었다.
1929년 10월 2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모두 7회의 공판이 끝난 뒤 11월 2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 180일 통산)을 받자, 항소하였다. 1930년 3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그러나 옥중에서 늑막염(肋膜炎)을 얻어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있던 상태에서 1931년 3월 20일 신의주청년동맹 제4회 정기대회에서 청년동맹 해소문제에 대한 의견을 진술하다가 임석 경관에게 중지를 받고 갑자기 피를 쏟으며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7. 11. 27, 1929. 11. 17·11. 24, 1930. 3. 21, 1931. 3. 8·3. 23)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38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9권 54면
- 不許可差押 및 削減 出版物 記事要旨(1931. 3. 25) 朝鮮出版警察月報 제31호
- 朝鮮日報(1930. 3. 23·3. 24)
- 中外日報(1930. 3. 14·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