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주종건은 함경남도 함흥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1917년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농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함남도청에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3.1운동을 전후하여 사직했다.
1921년 주종건은 중국 상해(上海)에서 열린 상해파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결성대회에 유진희(兪鎭熙) 등과 함께 국내대표로 참여하였다. 이후 일본 동경에서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 연구를 심화시켜 국내로 돌아와 선전활동을 하며 조선공산당 창당을 준비해갔다. 1923년 9월 조선노동대회준비회의 발기인이 되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사회주의 진영의 통합을 위해 ‘13인회’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24년 4월 조선청년총동맹 창립대회 중앙검사위원으로 선출된 주종건은 이듬해 4월 김재봉(金在鳳) 등과 조선공산당을 창당하여 중앙집행위원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소위 신의주사건으로 일경에 붙잡혀 신의주지방법원과 경성지방법원을 오가며 심리를 받았다.
수감 중 병으로 쇠약해져 보석으로 출옥한 주종건은 곧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였다. 조선공산당후원회(朝鮮共産黨後援會)를 조직하는 등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이어갔으나, 러시아 경찰에 붙잡혀 예심과정에서 사망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471~472면
- 東亞日報(1924. 4. 24, 4. 25, 1925. 12. 26, 1928. 2. 1, 2. 24)
- 時代日報(1926. 6. 27·29)
- 스탈린 시대(1934~38년) : 정치탄압 한인 희생자들(moсква, 2000) 138, 171면
- 倭政時代人物史料 제1권
- 咸南7·5第1事件-治安維持(1926. 8. 26)
- 金在鳳 신문조서 제2회(1926. 8. 16)
- 騎驢隨筆(宋相燾) 355·356·358·360·362면
- 國內容疑朝鮮人名簿 1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