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7월 중순 대한독립군비단 (大韓獨立軍備團) 함남통신사무국장 (咸南通信事務局長) 이동백 (李東白) 의 명령으로 함경남도 (咸鏡南道) 풍산군 (豊山郡) 에 풍산통신지국 (豊山通信支局) 을 설치하고, 다시 이동백 (李東白) 의 명령으로 강면하 (姜冕夏) 를 권유하여 이원군 (利原郡) 에 이원청년회 (利原靑年會) 를 설치하게 하였으며, 조선국내와 해외의 동향 및 일제의 통치와 독립운동가들의 상황을 파악하여 대한독립군비단 (大韓獨立軍備團) 에 보고하였고, 이후 노령으로 이동한 후 대한의용군사회에 소속되어 하사로 활동하며 1921년 12월에 이만에서 일본이 후원하는 러시아 백군과 싸우다 전사 순국 (戰死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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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20년 7월 함남(咸南) 풍산(豊山)에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풍산통신지국(豊山通信支局)을 설치하였다. 군비단은 장백현(長白縣) 17도구에 근거를 두고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주병록은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에 이원청년회(利原靑年會)를 설치하여 이를 표면 단체로 국내와 해외의 동향 및 일제의 통치와 독립운동가의 상황을 파악하여 대한독립군비단에 보고하였다. 보고한 내용은 주로 외국 신문·잡지에 보도된 조선독립의 여론, 3.1운동이후 일본정부의 시정방침, 이원군 지방의 금융상황, 경찰의 배치 상황, 3.1운동당시 처벌받은 사람이나 사망한 사람의 이름과 주소 등이었다.
주병록은 이후 노령(露領)으로 가서 대한의용군사회(大韓義勇軍事會) 하사로 활동하던 중 1921년 12월 이만에서 일본이 후원하는 러시아 백군과 싸우다 전사(戰死) 순국하였다. 1950년 조선인 유격대가 전사한 곳에 기념탑이 세워졌는데 주병록의 이름은 41번째에 새겨져 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528~533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홍범도 편(정신문화연구원) 169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6권 57면
- 재소한인의 항일투쟁과 수난사(박환 편) 54, 55면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xii 러시아篇 2104, 137면
- 不逞團員檢擧(朝鮮總督府警務總長:1921. 2. 1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