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19년 11월경 평양(平壤)에 체재하던 중 김영란(金永蘭)·김병항(金炳恒)의 권유로 비밀결사 숭의단에 가입하였다. 숭의단은 1919년 10월 3일경 평안남도 성천군(成川郡)에 있는 김홍록(金洪錄)의 집에서 김영란·최병연(崔炳淵)·박돈수(朴敦洙) 등이 모여 조직한 비밀결사이다. 숭의단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를 후원할 목적으로 조직되었으며, 당시 김영란 등은 동일한 목적을 지닌 공성단(共成團)이라는 결사도 조직해 활동하고 있었다.
주기정은 이후 김영란·김병항과 함께 윤홍수(尹弘洙)를 설득하여 동지로 규합하였으며, 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2월 21일경 조기수(趙基洙)의 집에서 김영란·김병항·이창해(李昌海)·윤홍수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 방법에 관해 논의한 결과, 김영란·조기수가 한 조, 주기정·김병항·윤홍수가 한 조가 되고 이창해가 이들을 통솔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조별로 각지의 부자들을 차례로 방문하기로 하고 이창해가 조기수와 주기정에게 권총을 나눠주었다.
다음날부터 군자금 모집 활동을 시작했는데, 순천군 내남면(內南面) 사평리(沙坪里)의 윤형일(尹亨一) 외 3명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27일 김병항과 함께 성천군 삼덕면(三德面) 문원리(文源里)의 정현조(鄭炫祚) 집으로 가서, 정현조의 부친 정학형(鄭學亨)에게 독립자금의 기부를 간절히 요청하였다. 정현조와 정학형은 독립운동자금 요청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돌아가려는 이들에게 하룻밤 묵고 가라고 강력히 요청하고는, 그 사이에 박우근(朴禹根)을 성천경찰서(成川警察署)로 보내 밀고해 버렸다. 이에 새벽에 출동한 순사들이 김병항과 주기정을 체포하였다. 1920년 1월 1일 정현조의 이와 같은 행위를 응징하기 위해 김영란·조기수·한국언(韓國彦)·최태준(崔泰俊) 등 숭의단원들은 정현조의 집을 방화·소각하고 그 가족들을 처단하였다.
1920년 1월 10일 검찰로 송치되어 오랫동안 고문과 취조를 받은 후, 1921년 8월 11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주기정은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2년 5월 8일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5)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9. 23, 11. 12)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5. 4, 8. 11, 11. 12, 1922. 4. 6)
- 독립신문(獨立新聞)(1921. 10. 14)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