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음력 8월 평안남도 대동군 시족면(柴足面)에서 대한국민회 총무 박승명(朴承明)의 권유를 받아 박응률(朴應律) 등과 함께 국민향촌회를 조직하였다. 대한국민회는 기독교 계통의 유력자들을 결속시켜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였다. 대동군 시족면의 국민향촌회는 대한국민회의 산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 음력 5월 5일 평양청년단장 겸 평안남도 총무 김봉규(金鳳奎)가 중국의 활동 상황 등을 언급하면서 독립운동을 위해서는 향촌회와 같은 완만한 단체보다 한층 더 견고한 단체를 조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준묵은 6일 시족면 지산(芝山)에 모여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을 조직했다. 대한독립청년단의 단장은 박응률, 서기는 김현재(金鉉載), 재무는 황종해(黃宗海)가 맡았다. 9월 대한독립청년단의 간부진 개편 때 조준묵은 교통원(交通員)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단장의 명령에 따라 김진준과 함께 이명덕(李明德)을 찾아가 군자금을 모집했다.
한편 당시 평안남도 등 각지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이 조직됨에 따라, 동시에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도 결성되었다. 대한독립청년단 및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의 목적과 활동은 다음과 같다. 먼저 독립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무기를 배급받아 친일분자를 처단하고 항일독립전쟁이 시작되면 결사대를 조직해 무력투쟁을 전개한다. 국내에 파견되어 오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안내하는 것 등이었다. 평안남도 대동군 및 강동군(江東郡)과 평안북도(平安北道) 철산군(鐵山郡)의 한국인 자산가(資産家)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고 단원들로부터 회비를 거두었다. 김봉규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1921년 3월에 강서경찰서(江西警察署)에 체포되었다. 이후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 사건’으로 확대되어 맹산군(孟山郡) 등 평안남도 각지에서 다수가 검거되었다. 7월 13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5. 13)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9. 8, 1922.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