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함남 신흥(新興) 사람이다.
1943년 11월 일제가 소위 임시육군특별지원병제도를 실시하여 한국의 청년들을 강제로 전선으로 끌고가자 그는 이에 응모할 것을 거부하다 주위의 강요에 의하여 부득이 1943년 12월 22일 경성특설지원병훈련소(京城特設志願兵訓練所)에 입소하여 1주일간 훈련을 마쳤다. 그는 육군 서부 18부대에 입영증서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오흥빈(吳興彬) 등의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 구국청년회(救國靑年會)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임되어 항일활동을 폈다.
동 회원들은 모임을 갖고 국제정세를 의논하면서 독립운동의 방안을 협의하였다. 그결과 이들은 연합군이 일제를 공격하여 일제는 반드시 패망할 것이므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이후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항일투쟁을 호소하는 격문을 전국에 발송하고 동지규합에 힘쓰다가 1944년 3월 5일 일경에 붙잡혔다.
이일로 인하여 그는 1944년 5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검찰요보 제3호 25·26면
- 조선검찰요보 제5호 41·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