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29년 1월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영주청년동맹지부 재무부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면서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 사상을 지니게 되었다.
1930년 3월 초 송위길(宋渭吉)과 이상을(李相乙)은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총독의 폭압정치에 항쟁하자는 내용의 격문을 작성하여 민중에게 배포하려고 계획하였다. 송위길이 격문 배포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였고 정형진은 이를 승낙하였다. 3월 23일 저녁 영주공원에서 회합하고, 영주시장 장날인 3월 24일 정오를 기하여 쌀시장, 포목시장 방면 등에서 격문을 배포한 뒤 함께 만세를 외치기로 협의하고 해산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체포되어 격문을 배포하지 못하였다.
1930년 3월 23일 체포되어 같은 해 4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을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 : 1930. 4. 23)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조선일보(朝鮮日報)(1929. 1. 26, 3. 25, 6. 24, 1930. 4. 1, 4. 25)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4. 2, 4. 5, 4. 1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776~7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