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4월 일본국 중앙대학 재학시 (中央大學在學時) 비밀결사 (秘密結社) 계미회 (癸未會) 에 가입 (加入) 재일동포 (在日同胞) 의 민족의식 계몽 (民族意識啓蒙) 및 항일운동 (抗日運動) 을 하다가 일경 (日警) 에게 피체 (被逮) 되어 전주형무소 (全州刑務所) 로 이감 (移監) 1년 4월 간 (間) 구금 (拘禁) 되어 있다가 출소 후 (出所後) 재차 (再次) 도일 (渡日) 하여 친화회 (親和會) 및 혈맹회 (血盟會) 를 조직 (組織) 하여 조선인 지원병 (朝鮮人志願兵) 및 학병 제도 (學兵制度) 반대 투쟁 (反對鬪爭) 을 하는 등 항일운동 (抗日運動) 의 선봉 (先鋒) 에서 투쟁 (鬪爭)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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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전북 진안(鎭安) 사람이다. 1941년 4월 일본(日本) 동경(東京)의 중앙대학(中央大學)에 재학하고 있을 당시 비밀결사인 계미회(癸未會) 동경한국유학생 친목독서회(東京韓國留學生親睦讀書會)에 가입하여 민족정신 앙양 및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42년 2월 17일 일경에게 붙잡혀 동월 22일 고향인 전주(全州)로 이송되어 전주형무소에 1년 4월동안 구금되고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1943년 6월 전주형무소에서 출옥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청년강제지원병(韓國靑年强制志願兵) 반대를 위하여 친화회(親和會)를 조직하고 재동경학병징발 반대투쟁위원장(在東京學兵徵發反對鬪爭委員長)이 되어 당시 최남선(崔南善)·이광수(李光洙)·김승수(金承洙) 등이 한국인 학병의 일본군 입대를 권유하는 강연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혀 20일간 구금되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아빠의 일기장(辛鎬) 271면
- ·동아일보 단상단하(壇上壇下)(1959.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