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한치진은 1917년 8월 중국 남경(南京)의 금릉대학(金陵大學)에 수학하고 1924년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로스엔젤레스의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유학 중에는 한국 독립을 주창하는 『삼일신보(三一申報)』 창간을 주도하여 발기인이 되었다. 일제는 한치진을 ‘민족운동의 급진적인 배일사상 소유자’로 지목하고 중국 유학 때부터 주시하고 있었다.
1929년 귀국한 한치진은 감리교 신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다, 1932년 9월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가 되었으나 일제의 계획적인 간섭으로 1936년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早稻田) 대학에서 철학 연구를 하면서 동경(東京)에 유학중인 한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민족문화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1944년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의 패망을 예견한 한치진은 “장차 일본은 패전하고 미군이 상륙할 것”이라는 시국담을 논하다가 육해군형법을 위반했다며 일경에 붙잡혔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2집 1264·126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3집 1180·1181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第3卷 708∼709면
-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警務局) 21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8권 499∼500면
- 南京居住 要視察 朝鮮人身元調査(南領機密 第17號1919. 4. 4)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