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19년 3.1
3. 1919년
4. 1920년 2월
5. 1720년 10월
6. 1922년 11월
(
3000
7. 1923년 3월
(1923. 3. 6
(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김천(金泉) 사람이다.
1905년 편강열(片康烈)과 함께 일제 총독 사내정의(寺內正毅)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자 편강열의 만주망명을 도왔다고 한다.
그후 1919년 곽종석(郭鍾錫)·김창숙(金昌淑)·김복한(金福漢)·임한주(林翰周) 등 영남·호서지방의 유림들이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한 독립청원서를 준비했다. 이 일로 그도 일경에 붙잡혔으나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또한 그는 1920년 가을 신태식(申泰植)·김찬규(金燦奎)·이응수(李應洙)·김동진(金東鎭)·김돈희(金敦熙) 등 경북지방의 인사들과 함께 비밀결사 조선독립후원의용단(朝鮮獨立後援義勇團)을 조직하였다.
조선독립후원의용단은 김찬규가 만주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로부터 권총과 위임장을 교부받고 김동진이 군자금모집 사령서와 사형선고서 등의 문서를 전달받은 후 국내에서 독립군 활동을 후원·원조할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동단은 경남지역까지 조직을 확대하여 경북단장에 신태식, 경남단장에 김찬규가 선임되었으며 총무·군무·군량·재무의 부서를 갖추었는데 그는 경북지역 군량총장을 맡아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동단은 경상도 일대의 자산가들에게 군자금모집 사령서와 사형선고서를 우송하며 군자금 수합에 힘썼는데, 그는 자신의 재산을 포함한 거액의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22년 12월 일경에 붙잡혀 가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1923년 예심 도중 병보석되었으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동년 5월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벽옹김창숙일대기 97면
- 고등경찰요사 208·211·25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5·24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93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747·748·75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