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이낙영은 함경남도 북청(北靑) 태양학교(太陽學校)와 서울 오성학교(五星學校)를 중퇴했다. 1919년 9월 부산에서 흥한민회(興韓民會) 단원으로서 독립운동자금 모집활동을 벌이다 일경에 붙잡힌 바 있었다.
1920년부터 이낙영은 북청에서 청년운동 등 주요 사회주의 단체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북청청년회 이사가 된 뒤 1921년 4월 조선청년회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923년에는 시천교청년회장(侍天敎靑年會長)이 되었다. 시천교청년회를 이끌며 전조선청년당대회에 참가한 서울청년회를 비롯하여 조선노동교육회 등 각종 사상단체에 가입했다.
이낙영은 1924년 고려공산동맹 함경남도 책임자로 있으며, 사회주의자동맹회(社會主義者同盟會) 서기 및 집행위원으로 활약했다. 1927년에는 조선노동총동맹(朝鮮勞動總同盟) 재경위원 및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어 노동운동을 이끌었다. 동년 신간회(新幹會) 창립을 주도하여 신간회 경성지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1927년 이낙영은 서울 춘경원(春景園)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제3차 대회의 의장 및 전형위원·조직부 위원 등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2월 일경에 붙잡힌 이낙영은 1930년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6월을 받았다. 옥중 병으로 쇠약해져 출옥하였으나 치료를 받던 중 1931년 5월 끝내 숨을 거두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4. 12. 8, 1927. 12. 12, 1931. 5. 20)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323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7권 456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8권 628·629면
- 倭政時代人物史料 1권 103~104면·2권 12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9집 358·35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4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