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대한제국군 육군 참령으로서 1906년 미국으로부터 귀국한 안창호(安昌浩)와 이동녕(李東寧)·김구(金九)·이상재(李商在) 등과 함께 1907년 4월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고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경술국치 이전에 일제의 침탈을 결사 반대하는 격문을 띄우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던 중 안창호 등이 주최하던 중국에서의 청도회담(靑島會談)에 참석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일제에 무력 항거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제 관헌에게 붙잡혔다.
1911년 8월 일제가 조작한 소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1913년 3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가 되었으나 1년 6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13년 출옥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북간도(北間島) 길림(吉林)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2월에 길림(吉林)에서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를 선포하였을 때 안창호·김좌진(金佐鎭)·이승만(李承晩)·김규식(金奎植) 등과 함께 39인 중 1인으로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1919년 4월 13도 대표가 모여 조직한 한성임시정부(漢城臨時政府)의 참모부총장, 노령 대한국민회의정부(大韓國民會議政府)의 참모총장에 각각 선임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군사직을 맡아서 광복군(光復軍) 양성에 주력하였다.
1919년 7월 동삼성 독립운동전선의 통일을 기하기 위하여 길림으로 파견되었으며, 대한민국 길림 주재 군정사독판(軍政司督辦)에 임명되어 군자금 모집과 무장항일운동을 지휘하였다.
1922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軍務總長)에 임명되어 1924년 4월까지 활동하였다.
1926년 4월 길림에서 각계의 혁신과 인사들이 모여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을 조직하였으며 그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9년 3월 민족혁명가들이 길림의 국민부 사무소에 모여 유일당인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을 결성하게 되자 그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임시정부에 귀환하여 다음해 10월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조직하였으며, 1932년 12월에는 국무원에 임명되었다.
1932년부터 1935년, 1939년부터 1940년, 1943년 3월부터 1944년 4월 등 수차에 걸쳐 임시정부 국무위원(참모장) 등을 역임하였고, 특히 1935년 중국 남경(南京)에서 김규식·지청천·신익희 등과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을 조직하여 독립투쟁전선을 통합하고 구국운동에 전력하였다.
1938년 5월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의 3당 통합운동을 추진하여, 1940년 5월 기강(藄江)에서 조직한 한국독립당의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1945년 2월에 신한민주당(新韓民主黨)을 창당하여 홍진(洪震)과 함께 당을 이끌어 조국광복을 대비하였다. 광복후 귀국하여 건국활동에 전념하다가 6·25당시 북한에 납치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89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였다.
- 무장독립운동비사 789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40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573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518·757-758·762·766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1집 191·303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3집 534·536·537·648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2권 66·67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13권 81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254·255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34·112·11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338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82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36·232·233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14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53·56·139·192·752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12권 65·321·328·4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