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20년대 중반 신사상을 수용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윤우열은 서울 중동학교,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 영어과, 동경(東京)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 속성과 등을 다녔다. 재학 중 그는 제국주의 타도와 신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는 무정부주의·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을 탐독해갔다.
1924년 서울청년회에 가입하는 한편 대구에서 제4청년회(第四靑年會) 조직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청년층의 단결과 교육훈련을 목표로 삼은 제4청년회는 노동·농민·부인·형평·소년운동 등을 적극 지원코자 하였다. 윤우열은 이후 철성단(鐵城團)·대구노동공제회(大邱勞動共濟會)·대구청년동맹(大邱靑年同盟), 경북사회운동자동맹(慶北社會運動者同盟), 자유노동자조합(自由勞動者組合) 등에서 활동하며 대구·경북지역 사회운동을 선도했다. 그는 서울에서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집행위원 및 조선노농대회(朝鮮勞農大會) 준비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26년 1월 윤우열은 ‘허무당선언서(虛無黨宣言書)’를 발표하였다. 1925년 4월 곽철(郭澈) 등이 무정부주의를 주창하며 흑기연맹(黑旗聯盟)을 조직하였다가 검거되자 이에 자극받은 그는 동지를 규합하여 일제에 대한 무력행사를 실현코자 선언서를 준비하였다.
윤우열은 ‘허무당선언서’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상황을 “이중삼중으로 폭악한 적의 박해를 받고 있으며… 착취와 학대와 살육과 조소와 모욕이 있을 뿐인 암흑한 수라장”이라 정의하고, “불안과 공포로서 신음하고 있는 이때에 폭파·방화·총살의 직접행동을 주장하는 허무당이 분기하였다”며 일제에 무력으로 대항하자는 뜻을 밝혔다. 일제에 ‘선전포고’한 그는 선언서를 서울 각 신문사 및 주요 관공서 등 177개소에 배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윤우열을 체포하였다. 1926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그는 1년 2개월의 옥고를 치르다가 감형되어 이듬해 2월에 출옥하였으나, 폐렴으로 출옥 4개월만에 숨을 거두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309면
- 騎驢隨筆(宋相燾) 347면
-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236~23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2권 54·55면
- 受刑人名簿(京城地方法院)
- 時代日報(1924. 12. 26, 1925. 1. 5, 1926. 1. 17)
- 東亞日報(1925. 1. 7, 1926. 1. 16, 1. 17, 2. 5, 5. 7, 1927. 1. 20, 5. 24,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