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7~8월 경기도 가평군(加平郡)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 보내려는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7월경, 경기도 양주군(楊洲郡)을 근거지로 박순근의진(朴順根義陣)을 이끌던 박순근의 지휘 아래 맹종섭(孟鍾燮)ㆍ유인호(柳寅鎬)ㆍ이도야지(李都也之)ㆍ이용길(李龍吉) 등과 함께 중국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낼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려는 계획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경기도 포천군(抱川郡)ㆍ양주군(楊州郡)ㆍ가평군과 강원도 등지를 대상으로 활동하기로 하였다.
1920년 7월 27일 가평군 상면(上面) 율길리(栗吉里)에서, 8월 6일에는 가평군 외서면(外西面) 대성리(大成里)에서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과 물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0년 8월 15일 저녁부터 8월 16일 새벽 사이에 포천경찰서 수사대에 모두 체포되었다. 당시 윤영수는 포천군 내촌면(內村面) 진목리(眞木里)에 있는 산속에 동지 3명과 함께 잠복하며 지내고 있던 중, 경찰의 추격을 피해 근처 헛간에 숨었다가 제일 먼저 발각되었다. 그날 밤 때마침 산속으로 돌아오던 박순근은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대치하다가 창상(創傷)을 입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이들로부터 총과 칼을 비롯해 탄환, 몽둥이 등을 압수하였다.
1921년 3월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강도죄(强盜罪)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박순근은 징역 15년, 이도야지는 징역 12년 등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20. 8. 20, 1921. 3. 19)
- 東亞日報(1920. 8. 20)
- 新韓民報(1920.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