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유영규는 평안북도(平安北道) 영변군(寧邊郡) 용산면(龍山面) 운봉리(雲峰里)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으며, 1920년 4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동년(同年) 음력 8월 평남(平南) 덕천(德川)에서 조선독립군비단(朝鮮獨立軍備團) 김기영(金基影)으로부터 독립운동기관의 설치를 권유받고 대한독립자유회(大韓獨立自由會)를 조직해 총무에 취임한 후 동지 획득과 운동자금 모집에 힘쓰다 간도(間島)로 망명하였다.
1921년 7월 중국 장백현(長白縣)에서 군비단원 김문기(金文基)와 함께 다시 평북 덕천으로 돌아와 시천교(侍天敎) 지부장 박병양(朴丙陽)을 설득하여 자유회의 확대 강화에 노력하다 1921년 8월 31일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았다. 당시 유영규는 오태국(吳泰國), 황영화(黃榮華), 김문선(金文善) 등과 함께 국권회복론(國權回復論)이란 책자를 인쇄하여 여러 방면에 배포함으로서 독립사상을 널리 선전하였으며, 덕천, 영변(寧邊), 맹산(孟山)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덕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유영규는 1932년 10월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한 후 국민부 산하의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총사령(總司令) 양세봉(梁世奉)에 의해 국내로 파견된 변락규(邊洛奎)와 함께 무명회(無名會)를 조직하고 김일봉(金一鳳), 장인준(張仁濬), 김준필(金俊弼) 등과 국민부의 국내 조직 결성을 위한 단원모집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1933년 2월 체포되었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1922. 3. 18)
- 조선독립운동(김정명) 제1권 分冊 672~674면
- 독립신문(1921. 10. 28)
- 判決文(平壤地方法院:1933. 5. 19)
- 張仁濬 假出獄關係書類(1936년 6월 29일 평양형무소)
- 騎驢隨筆(宋相燾) 427~42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814~816면
- 朝鮮日報(1921. 9. 8)
- 東亞日報(1921. 9. 8, 9. 22, 9. 26, 10. 28, 1922. 1. 26, 1933. 2. 28, 3. 8, 3. 13, 4. 29, 5. 11, 5. 13, 5. 22,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