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24년 4월 오산공립농업보습학교(烏山公立農業補習學校)에 재학했다. 이후 일본 교토(京都)에 가서 1926년부터 1930년까지 신문을 배달하면서 교토 소재 중학교와 대학 전문부에 다녔다.
일본 교토에서 전협 일본출판노동조합 경도지부 책임자를 역임하고 1932년 1월에 대구로 돌아왔다. 같은 해 9월부터 남성정(南城町) 기독청년회관을 근거지로 학생 청년‧노동자층이 중심인 비밀결사로 대구노동자협의회를 조직했다.
대구노동자협의회의 책임자를 맡고 중등학교부에는 독서회를 조직하여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였다. 1932년에는 일제의 침략전쟁 등에 반대하는 글을 기관지 『대협』, 『연말컴빠니아』에 게재했다.
1933년 3월 대구기독교회를 중심으로 노동자‧농민‧학생‧소시민을 계몽하고자 대구노동자협의회 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로 인하여 동료 20여 명과 함께 대구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33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 : 1933. 11. 8)
- 중앙일보(中央日報)(1933. 4. 5)
- 동아일보(東亞日報)(1933. 4. 6, 4. 13)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사상월보(思想月報)(1933. 5. 15) 제3권 제2호 9면
- 사상월보(思想月報)(1933. 6. 15) 제3권 제3호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