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10~12월 전북 임실군(任實郡)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를 표방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3ㆍ1운동의 영향으로 1919년 4월 중국 상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1920년 10월경 전주(全州)에 있는 김성도(金成道)의 자택에서 조기선(趙基善)ㆍ고판홍(高判洪)ㆍ김성도ㆍ김성수(金成洙) 등과 회합하여, 임실군 내 부호(富戶)들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모집된 자금 중 일부는 상해 임시정부로 송금하여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상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할 자금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고판홍이 이선경(李善京)에게 의뢰하여 철관(鐵管)으로 총통(銃筒)을 제작하고 나무 조각을 이용하여 모의권총 두 자루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성수가 금융조합의 출금전표(出金傳票)를 구해오는 등 구체적으로 활동을 준비하였다.
1920년 11월 30일 조기선ㆍ고판홍ㆍ김성도와 함께 임실군 청웅면(靑雄面) 옥산리(玉山里)에 있는 오태섭(吳泰燮)의 주막(酒幕)에서 회합하였다. 이 자리에서 임실면(任實面) 신안리(新安里)에 있는 한규석(韓奎錫)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을 모집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그날 바로 조기선과 고판홍은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으며, 만일에 대비하여 유기홍과 김성도는 주막에서 대기하기로 하였다. 당일 오후 4시경 조기선과 고판홍이 한규석의 집으로 가서 "자신들은 가정부원(假政府員)으로 기부금을 모집하러 왔다"고 하며 군자금을 요구하였다.
이후에도 1920년 12월 1일 조기선과 함께 임실군 청웅면 남산리(南山里)에 가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고, 다시 이틀 후인 12월 3일에는 조기선ㆍ고판홍과 함께 임실군 운암면(雲岩面) 용운리(龍雲里)에서 현금 20원 등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3월 2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전주지청(全州支廳)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全州支廳 : 1920. 12. 22.)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全州支廳 : 1921. 3. 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제9집 982~98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973~9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