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남 영원(寧遠) 사람이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는 조맹선(趙孟善)이 사령장(司令長)으로 있는 대한독립광복군(大韓獨立光復軍) 사령부(司令部)의 산하 청년조직으로 국내의 청년단체들을 통할한 조직이었으며, 특히 평안도 일대에 조직이 발달하였다.
그는 1921년 2월 이후 이원보(李元輔) 등과 함께 덕천군 일대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여 6백6십 원의 군자금을 동단의 평안남도 총무인 김봉규(金琫奎)에게 전달하였다.
또한 동년 2월 초 이운서(李雲瑞)의 집에서 나신택(羅信澤)·김병훈(金秉薰)·이원보 등과 함께 독립 달성을 위하여 일제 기관의 파괴·무기탈취·친일부호의 처단·군자금 모집 등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일제의 우편차를 공격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1921년 3월 20일 덕천우편국에서 영원우편국으로 이송하는 우편차를 덕천군 풍덕면(豊德面) 신흥리(新興里) 대현(大峴)에서 기습하여 호위하던 영원(寧遠) 경찰서 순사 박의창(朴義昌)을 처단하고 공금 5천 원과 권총 1정(挺)을 확보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와 함께 이들은 일제 기관을 파괴하기 위하여 각종 폭발물을 제작하는 한편 맹산군(孟山郡) 선유봉(仙遊峯) 중턱에 호굴(虎窟)을 근거지로 삼아 1만 2천자의 활자와 3대의 인쇄기를 설치하고 각종 격문과 선전물을 인쇄하여 평안도 일대에 배포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1921년 6월 일경에 붙잡혀 1922년 7월 2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410·500·515·516·518·520·525·526·528·531·533·547·950면
- 한국민족운동사료(3·1운동편, 其一)(국회도서관) 536∼538면
- 동아일보(1921. 6. 20, 10. 5, 10. 9, 11. 4, 1922. 3. 9)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631∼6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