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대한제국시기 육군 정교(正校 特務曹長)로 있다가, 1907년 군대 해산으로 면직되었다. 일본어를 알았던 염덕신은 숙모 백상궁(白尙宮 白姓女)의 연고로 덕수궁 내승(內丞)이 되어 광무황제(光武皇帝)를 측근에서 보필하며, 당시의 정세를 탐지하여 알려주었다.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 조국독립운동에 크게 유리하다고 인식했던 이상설·신규식·박은식·신채호·박용만 등은 1915년 3월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을 조직하였다. 1919년 6월, 국내에도 동지 규합을 위해 외교부장 성낙형(成樂馨)과 김주원(金冑元)을 파견하였다. 성낙형은 김승원(金昇元)의 집에 투숙하며, 변석붕(邊錫鵬)·심인택(沈仁澤)·박봉래(朴鳳來)·정일영(鄭馹永)·김승현(金勝鉉) 등을 규합하였다.
염덕신은 김승현의 소개로 성낙형을 만났고, 성낙형이 작성한 중국·독일·영국·러시아가 일본을 연이어 공격하고 있다는 내용의 경각서(警覺書)를 김승현으로부터 받았다. 7월 26일 오후 12시경 염덕신은 덕수궁 함녕전 남측 거실에서 광무황제에게 이상설·성낙형 등이 국권회복운동에 힘쓰고 있음을 말하고 경각서를 전하였다. 그리고 이 계획에 동조한다면 신한혁명당에서 제2의 방책을 전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광무황제는 경각서에 만족하고 성낙형을 직접 면담하고 싶으며 제2의 서신을 기대한다는 말을 전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염덕신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5년 10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李相卨傳(윤병석, 1993) 167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6) ⅰ권 278, 281, 293, 296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5.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