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차한옥은 1940년 3월경부터 미쓰코시(三越) 백화점 동료 신주(申舟, 申周), 한영중학원 야간부 동기 박백중(朴百仲)과 교유하며, 한국인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나 조국을 독립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분명히 인식하였다.
1941년 12월 7일 신주·안두경(安斗京) 등과 만나 일·미 개전은 필연적이며, 개전을 하면 일본과 독일은 패배할 것으로 그 기회를 틈타 조국독립을 도모하고자 단체를 조직할 것을 의논하였다. 12월 10일경에는 박백중도 참여한 자리에서 혁명투쟁을 통한 조국독립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회장 안두경, 회계 박백중을 선임하고, 단비로서 월 1인당 금 5원을 갹출하여 운동 자금으로 할 것, 매월 넷째 일요일에 월회의(月會議)를 열 것, 기관지 발행 및 격문을 살포하여 대중에게 선전을 할 것, 단원은 비밀을 엄수하고 이를 폭로하는 자는 살해하고 새로 입단하는 자는 전 회원의 승낙을 받을 것 등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1942년 1월 넷째주 일요일과 2월 둘째주 일요일에 월회의를 개최하였다.
1944년 1월 경, 신주·김영규(金永圭)과 만나 당시 세계정세를 이야기하면서 독일과 일본은 패전할 것이며, 그 기회를 타서 조국독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여 혁명 의식 앙양은 물론 동지 포섭에 진력하여 혁명 운동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자고 결의하였다. 8월 12일경, 김영규와 만나 당시 국제 정세를 듣고 조국독립의 의식을 더욱 견고히 하였다. 이로 이하여 차한옥은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8월 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미결구류 200일 통산)을 받아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광복을 맞아 석방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2집 1265~1270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45.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