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평안남도 강서군 성태면(星台面) 현곡리(峴谷里)에 있는 사립학교 교원으로 재직했다. 1920년 2월 성태면 반육리(班六里)에서 최봉주(崔奉周)·조형신(曹亨信) 등의 권유로 최영반(崔靈磐)과 함께 국민향촌회(國民鄕村會) 여자부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 조직은 남자부 조직인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과 연계하여 동지를 규합했으며, 입회 후에는 각 회원으로부터 3원씩의 입회비(入會費)를 모금하였다. 또한 군자금 모집, 항일문서 배포, 항일사상 선전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4월 중순경에는 성태면 반대리(班大里)에 있는 북장로파(北長老派) 계통의 예수교회당 부속 반석학교(磐石學校) 여자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한애국부인청년단을 조직하고 단장(團長) 및 서기(書記)를 맡아 활동하였다.
대한부인청년단·반석대한애국청년단(磐石大韓愛國靑年團)·반석대한부인청년단 등으로도 불리던 대한애국부인청년단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중국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수립되자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여성청년들 중심으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이다. 대한애국부인청년단의 단장으로서 단원들로부터 모은 현금 10원과 12월부터 1921년 3월 10일경까지 평양(平壤) 등지의 부자들로부터 모집한 군자금을 고유순(高有順)과 김예진(金禮鎭)을 통해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내는 등의 활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던 중 1921년 3월 10일 강서군 성태면 현곡리에 있는 백운옥의 자택에 숨겨두었던 항일문서 등이 수색을 당했다. 이어서 동지들과 함께 강서경찰서(江西警察署)에 체포되었다. 30일경 동지 8명과 함께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 진남포지청(鎭南浦支廳)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단원 대부분은 4월 5일 재판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안인대는 같은 해 9월 21일에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2년 6월 17일 평양형무소(平壤刑務所)에서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비밀결사 대한독립여자청년단(大韓獨立女子靑年團) 검거의 건(육군성:1921. 4. 6),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關係書類)(3)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3. 29, 4. 4)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4. 6, 10. 24)
- 조선일보(朝鮮日報)(1921. 4. 11)
- 독립신문(獨立新聞)(1921. 4. 21)
- 신한민보(新韓民報)(1921. 11. 10)
- 조선독립운동(朝鮮獨立運動)(김정명, 1967) 제1권 분책(分冊) 562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8) 제38권 36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438~440, 96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4권 467~46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