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20년대 초부터 서울청년회, 경성노동회(京城勞動會) 등에 가입하여 대중운동과 사회운동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신표성은 1925년 1월 군산청년회(群山靑年會), 군산노동연맹회(群山勞動聯盟會), 민중운동사(民衆運動社)가 연합 주최한 레닌 추도강연회에서 ‘조선 농촌에서 본 레닌’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동년 4월 전조선노농대회(全朝鮮勞農大會) 준비위원 및 자격심사위원이 되었고, 조선사회운동자동맹(朝鮮社會運動者同盟) 상무위원이 되었다. 또 전진회(前進會) 및 국제청년데이 기념협의회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무렵 모스크바 공산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중국 상해(上海)로 갔다가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가입하였다. 1926년 2월 귀국하여 3월 조선공산당 대전(大田)야체이카 책임자가 되었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된 신표성은 1928년 2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충남 논산군(論山郡) 양촌면(陽村面)에서 소위 적기(赤旗)사건으로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적기사건은 동년 5월경 동면(同面) 인천리(仁川里)에서 농민 70여명이 머슴계를 조직하고자 양촌주재소에 집회신청을 하였으나 받아들이자 않자, 흥분한 군중들이 적기를 흔들며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격렬하게 항쟁하였던 사건이다. 신표성은 1933년 9월 소작계를 조직해 농민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또 다시 체포되기도 하였다. 1944년 건국동맹(建國同盟) 충남북지부 책임자로 선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社會科學大事典(이석태, 1948) 15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별집 4권 576면
- 일제하 농민조합운동연구(지수걸, 1993) 473~474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신표성 구류장(경성지방법원검사국 : 1926. 8. 10)
- 東亞日報(1925. 1. 21, 1928. 2. 1·2. 14·9. 17·9. 19, 1932. 8. 14, 9. 7, 10. 3)
- 朝鮮日報(1932. 5. 30)
- 朝鮮解放同盟 발기취지서 발송금지의 건(1925. 4. 15) 檢察事務에 관한 기록(1)
- 조선사회운동자동맹 발기준비위원회의 동정에 관한 건(1925. 4. 23) 檢察事務에 관한 기록(1)
- 조선청년총동맹의 동정에 관한 건(1925. 6. 19) 檢察事務에 관한 기록(2)
- 국제무산청년데이 기념협의회의 건(1925. 9. 1) 檢察事務에 관한 기록(1)
- 조선운동사 창립위원회에 관한 건(1925. 9. 22) 檢察事務에 관한 기록(1)
- 사상요시찰인연명부 추가의 건(1926. 4. 19) 檢察事務에 관한 기록(3)
-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局, 1934) 301~302면
- 現代史資料(姜德相, 1970) 제5권 73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8권 738~740면
-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1986) 제2권 254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2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