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조선일보 광양지국을 경영하고, 미곡상회를 운영하면서 광양지역 노농운동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다. 1922년에는 광양청년회 결성에 앞장서며 집행위원을 맡았고, 1924년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집행위원, 광양노동청년회 서무부위원, 광양노동회 위원장, 광양노동연맹 집행위원 등을 맡으며, 청년운동 및 노동운동 단체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7월 조선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이 무렵 전라노농연맹회 집행위원을 지냈다.
1925년 9월 전라남도 동부지역의 광양·순천·고흥·구례·보성·여수 6개 군 청년단체들이 연합하여 전남동부청년연맹(全南東部靑年聯盟)을 결성할 때, 여수지역 출장위원으로 선정되어 이 지역 가맹단체 모집을 담당하였다.
1926년 제2차 조선공산당의 전남도당 집행위원으로 선임된 후, 경상남도 위원인 김명규(金明奎) 등과 함께 전남·경남 양도위원회(全南·慶南 兩道委員會)를 개최하며 조직 구성과 회원 확보 등에 힘을 쏟았다. 동 위원회는 조직을 교양·비서·책임부로 구성하여 일반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6년 6월 ‘제2차 조선공산당사건’으로 일경에 검거되어 1928년 2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9년 8월에는 신간회 광양지회 집행위원장으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1924. 9. 17, 1925. 11. 2·11. 18·11. 20·11. 25·11. 30, 1926. 3. 30, 1927. 1. 21, 1928. 2. 1·2. 14)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254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4권 523면
-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1986) 제2권 400면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8권 740면
- 騎驪隨筆(宋相燾, 1955) 357·3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