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3년 음력 2월 대구에서 출생후 김천시 양천동에 거주하면서 대한독립후원의용단 (大韓獨立後援義勇團) 에 가담하여 만주에 있던 동지와 연락을 취하며, 군자금을 조달 하였으며, 의용단의 국내 주동자 김찬규 (金燦奎) (90, 애국장)를 자택에서 8일간 병간호하며, 일경 으로부터 피신 시켰으며 1918년 음력8월1일 위와 같은 항일행적으로 인해 검거되어 6월 징역형으로 대구형무소에서 옥고 를 치루었다.
○ 1927년 음력 3월 21일 신간회 김천지회 산하 금릉청년회를 비롯 3개 단체(대의원 38명)를 조직하여 운영위원으로 활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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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음력 3월 21일 신간회 김천지회 산하 금릉청년회를 비롯 3개 단체(대의원 38명)를 조직하여 운영위원으로 활약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20년 12월경 의용단(義勇團)에 가담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였다. 또한 장세명(張世明)을 권유하여 의용단 군무총장으로 활동케 하였다.
의용단은 중국 간도 군정서 군무총장 노백린(盧伯麟)을 중심으로 이응수(李應洙)·김찬규(金燦奎) 등이 경상남북도의 항일지사를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한 단체였다. 이들은 1922년 1월부터 11월까지 경북 경산군의 안병길(安炳吉), 청송군 조규한(趙奎漢) 등 15여 명의 자산가에게 37만여 원을 부담시키고, 일제에 협력한 이중황(李中晃) 등 7명에게 사형선고서를 발송하였다.
신현식은 의용단 사건으로 1922년 11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1919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1923년 1월 6일부터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名籍表(대구감옥)
- 東亞日報(1922. 12.20·12.21·12.23·12.30)
- 每日申報(1922. 12.21·12.22·12.30)
- 出監指揮書(대구형무소, 1923. 7. 13)
- 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208~2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