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과 청년 학생들의 선도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는 빠르게 전국 각지로 전파되었다. 황해도 평산군에서도 손병희의 지시를 받은 이동락(李東洛)이 귀향하면서 시위가 준비되었다.
그리하여 3월 7일 평산 읍내에서 최초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고 3월 30일에 2차 만세시위가 이루어졌다. 당시 평상 주민이던 신만균은 3월 31일 황해도 평산군 인산면 기린리(麒麟里)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6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주도했다.
신만균과 시위대가 시장을 중심으로 행진하면서 시위가 인근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이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시위대 3명이 순국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곧이어 이어진 탄압으로 신만균도 체포되었다. 1919년 7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상해‧소요’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하였으나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 : 1919. 9. 22)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245~2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