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신기균은 1919년 경북 대구에서 유림 대표 곽종석·김복한 등 137명이 연서하여 작성된 독립 청원서(일명 파리장서)를 파리평화회의에 보내 한일합방의 부당성을 세계 만방에 알리려 했던 유림단(儒林團)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경찰부에 체포되어 고초를 당하였다.
1924년 음력 8월 말경, 김찬규(金燦奎)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盧伯麟) 명의의 지령 1장을 받고, 군정서(軍政署) 국내 운동원이 되었으며, 30원의 군자금을 제공했다. 1926년 1월경 밀양에서 경북경찰부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고, 3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무죄를 받아 석방되었다. 이후 1930년 9월경 권총을 반입하다 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中外日報(1930. 10. 1)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1934) 280, 281면
- 東亞日報(1930. 9. 29)
- 朝鮮日報(1926. 3. 26)
- 時代日報(1926.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