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과 고려공산당청년회 설립 등에 참여했다. 4월 20일 서울에서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라 전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서울로 모였다. 그러나 대회 전날 오후 9시 일본 경찰에 의해 갑자기 ‘안녕 질서를 방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대회 개최가 금지됐다. 4월 20일 오후 6시경 대회 개최가 금지된 것에 격앙된 참가자 일부가 남산의 신사(神社) 부근에 모여 예정대로 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밤 9시경 종로 우미관(優美館) 앞에 모인 참가자들이 검은 글씨로 ‘경찰의 무리한 압박에 저항하자’라고 쓴 적기(赤旗)를 흔들고 ‘민중운동자대회 만세’ ‘무산자 만세’를 외치며 시내를 행진했다. 군중은 단성사(團成社) 앞에서 경찰의 제지를 받았으나 만세 고창과 행진을 계속했다.
당시 서상욱은 대구의 공산주의 계열의 단체 용진단(勇進團) 집행위원으로 적기사건에 간여했다. 직후 종로경찰서를 중심으로 일명 ‘적기 사건’의 주요 관련자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이후 10월 19일 이른바 ‘협박(脅迫)’혐의로 체포됐으나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됐다. 그러나 11월 22일 조선공산당 ‘대검거’의 시작점이 된‘신의주 사건’이 일어나자 관련자로 12월 11일 다시 체포됐다.
서상욱은 전조선민중자대회에 참여한 혐의로 4월 26일 대구경찰서(大邱警察署)에 체포돼 같은 날 밤 서울로 압송됐다. 1925년 6월 8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25. 6. 8)
- 중외일보(中外日報)(1927. 4. 3,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