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최경선은 1919년 3월 2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용산면(龍山面)소재 안식교회당에서 500명의 시위대를 인솔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재차 시위운동을 계획하였지만, 일제의 감시로 여의치 않자 동년 6월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갔다.
상해에서 최경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에 가입하였다. 대한독립청년단은 평안남도 청년층의 주도로 조직된 일종의 별동대로, 단원을 200명으로 한정하고 임시정부 교통국과 긴밀한 연락 관계를 유지하며 국내 연락·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군자금 모집에도 노력하였다. 최경선은 대한독립청년단의 기관지 『청년혈(靑年血)』을 발행하였다. 1919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애국금수합위원(愛國金收合委員)으로 위촉되어 활동하였다.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의 지시로 국내로 들어와 황해도, 평양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최경선은 1920년경 독립운동자금 모집활동을 계속하던 중 일경에 붙잡혀 10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新聞(1920. 5. 25, 1921. 2.17)
-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 제6권 371~378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제1권 分冊 380, 381면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5권 2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