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는 상황에서 민족전통문화의 수호를 통한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옥고를 치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박태철은 일본의 패전을 예견하고, 독립에 대비하기 위하여 해외의 독립운동자들과 연락을 도모하였다. 그러는 한편 그는 1941년 11월 초순경, 동지 김은도(金恩道)와 함께 독립운동의 방도로서 민족전통의 풍속과 한글을 수호하는데 힘을 쏟았다. 1943년 7월 경, 그는 조선기계제작소(朝鮮機械製作所) 동료직원 임창빈(任昌彬)·이도열(李道烈)·노명일(盧明一) 등 3명에게 한글로 문학작품을 써서 책자로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민족의식이 강한 작품을 게재한『목양』이란 잡지를 제작·배포하여 태평양 전쟁에서 일제가 패배하고 조선은 곧 독립을 이룰 것이라고 하여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러던 중 1944년 6월 경, 그는 동료들과 함께『목양』 제2호를 제작하기 위해 원고를 모아 등사하던 중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45년 5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45. 5. 14. 京城地方法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2輯 1253-125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