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11월 평남 평원에서 독립운동의 목적으로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을 조직하였다. 박치렴은 김창수(金昌洙)·박영진(朴榮鎭)·박제돈(朴濟敦)·조석영(趙錫泳)·이준모(李俊模) 등과 함께 1919년 11월 경 평원군 양화면 중흥리를 근거로 정하고 평양부·대동군·평원군 등 여러 곳에서 청년들을 모아 대한청년단을 조직한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며 독립을 이룰 때까지 활동을 하겠다고 서약하고 단금(團金)으로 1인당 2~3원씩 모집하기로 하였다. 이후 단원을 모집하고 단금 50여 원을 모금한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21년 4월경에 평양검사국에 압송되었고, 1921년 8월 30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열렸으며, 당시 검사는 그에게 징역 1년 6월을 구형하였다. 그러나 9월 2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열린 판결 공판에서 소위 ‘1919년 제령 제7호(정치범처벌령)’ 위반으로 징역 8월(미결구류 60일 통산)을 받아 평양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1922년 3월 4일 만기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508~509면
- 東亞日報(1921. 9. 5, 1922. 3. 14)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