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19년 3월 1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1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0년 8월에는 평양 지역 장로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회계로 활동하였다.
3월 1일 숭덕학교 교정에서 광무황제 봉도식(奉悼式)이 열린 후 독립선포식을 거행한 사람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고 큰 거리로 진출하였다. 상인들도 철시하고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평양경찰서 앞에서 천도교구당과 남산현교회(南山峴敎會) 등에서 행진해 온 군중이 합세하여 도청, 재판소, 평양역 광장, 평양부청, 평양형무소 등 시가지를 돌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7시경에는 시위군중이 평양경찰서 앞에서 경찰과 충돌하였다. 이 투쟁 가운데 많은 사람이 부상당하고 수백 명이 검거되었다. 밤에는 학생들이 다시 행진하며 만세를 부르는 등 만세운동의 열기는 계속되었다.
3월 2일부터 평양 경찰은 대거 검거에 나섰다. 3월 8일까지 평양 시내에서 4백명이 검거되고 박치록 등 48명은 기소되었다. 이로 인해 박치록은 1919년 7월 9일 평양복심법원,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후 박치록은 1919년 12월 비밀결사 대한국민회사건으로 불구속되었으나, 1920년 8월 다시 평양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19. 3. 12)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18)
- 新韓民報(1920. 9.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9집 435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366면
- 東亞日報(1920.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