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진주(晉州) 사람이다.
1931년 경남 진주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대중운동을 주도하였다.
박원효는 경성부 중앙고등보통학교와 동경시 동경영어보급학교에서 수학하였고, 그 후 진주에서 조선일보 진주지국을 경영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경남(慶南)오르그'의 지령을 받은 권대형(權大衡)과 함께 1931년 3월 경남 진주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때 이들은 노동·농민·학생의 3개 부서를 만들었는데, 박원효는 노동부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비밀결사 조직 후 활동이 여의치 않자 박원효를 비롯한 2인은 1931년 12월 하순경에 강두석의 집에서 조직을 혁명적 농민조합·노동조합·반제동맹 등으로 개편하였다. 그리고 박원효는 반제동맹(反帝同盟) 및 적색후원회(赤色後援會) 조직부를 담당하고, 강두석은 적색농민조합 조직부, 박수명은 적색노동조합 조직부, 강병도는 이상 각 부를 통괄하는 연락부의 책임자로 선임되었다.
박원효는 이 일로 붙잡혀 1933년 4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2. 3. 1, 7. 22, 7. 24, 8. 30, 9. 4, 1933. 3. 1, 3. 10)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33.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