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6월 함북 경흥군(慶興郡) 웅기면(雄基面)에서 독립중로선전부(獨立中露宣戰部)와 연계하여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독립중로선전부는 1919년 음력 10월경 이동휘(李東輝)를 중심으로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 요하현(饒河縣) 농평리(農坪里)에서 조직되었다.
박영심은 독립중로선전부 부원인 김하련(金河鍊)의 의뢰를 받아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김하련은 평소 우리 조선이 중국, 러시아, 미국 등과 연합하고 있어서 머지않아 독립이 실현될 것이라고 역설하면서 조선 각지에서 군자금 모집을 요청하였다. 또 흑룡강성에 있는 조선인 동포들은 조선독립운동에 노력할 뿐만 아니라 총기와 탄약을 매입하며 전투할 단원을 모집하는 중이라면서 단원 모집에도 노력하였다. 박영심은 1920년 음력 6월 8일경 김하련으로부터 독립중로선전부의 군자금 모집을 의뢰받고, 마을 주민 수십 명을 자기 집으로 불러 모은 뒤 60원을 모집하여 김하련에게 주었다.
박영심은 1920년 10월경 동지 50여 명과 함께 웅기경찰서에 체포된 뒤 1921년 5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21. 5. 2)
- 每日申報(1920. 10. 2, 10. 8, 1921. 3. 24)
- 東亞日報(1921. 4. 10)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