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9년 6월 평안남도 평양(平壤)에서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를 조직하여 지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동년 11월 대한애국부인회로 발전시켜 대한민국임시정부 를 후원하는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배일사상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 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6월경 평안남도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장로파(長老派)와 감리 파(監理派)의 부인 신도들이 각기 자기 교파의 부인 신도들을 결속하여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원조를 목적으로 하는 애국부인회라는 비밀결사 를 조직하였다.
동년 8월경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원인 김정목(金貞穆)·김 순일(金淳一) 등의 권유에 의하여 두 교파의 부인 신도들이 서로 제휴·연합을 논의한 끝에 동년 11월 연합에 성공하여 명칭을 대한애국부인회라 하며, 평양에 연합회 본부를 두고 주요 지방에 지회를 두는 계통적 비밀 결사를 이루었다.
1919년 6월 박승일·최순덕(崔順德)·이성실(李聖實)·손진실(孫眞實)·황신덕 (黃信德) 등이 평안남도 평양부 서대문 밖 백동엽(白東燁)의 집에 집합하여, 박 승일이 감리교파 부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원조할목적의 단체 결성의 취지를 설명하고, 일동이 찬성하자 임원을 선정하였다.
동 월 중순경 평양 남산현(南山峴) 교회의 유치원 내에서 다시 회합을 개최하였으 며, 이어 7월 15일 남산현교회당의 방에서 회합하여 임원의 개선, 회비 금액의 개정, 활동 방법 등을 협의하였다.
동년 8월 중순 같은 장소에서 회합하여 활동 의 경과 및 장로파와의 연합 여부에 대하여 협의하고 일동이 이에 찬성하였다.
동년 11월 양파 연합의 논의가 성립하자, 동월 상순경 박승일 등 양파 간부 각 6명이 평양부 신양리(新陽里) 김경희(金景喜)의 방에 모여, 한영신(韓永信)의 발기로 1919년 6월경 이겸양(李謙良)·김경선(金景善)·김보원(金寶源)·김경희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장로파 부인 단체인 애국부인회와 연합하여 대한애국부 인회를 조직하는 것을 주도하였다.
이 날 모임에서는 본부를 평양에, 지회를 각 지에 둘 것, 본부의 임원은 양파가 공평하게 선임할 것, 이미 설치된 각파 부인 회는 그대로 지회로 할 것, 각 지방의 각 파 부인 유지에게 권유하여 지회를 설 립할 것, 일반으로부터 회비 이외의 군자금을 모집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이후 박승일은 평양의 기홀병원(紀笏病院) 내에 근무하면서 평양 감리파 지회 장으로서, 1920년 4월경까지 수 차례 걸쳐 외국인이 경영하는 기홀병원 등 기타 장소에 모여 임원의 개선이며 회원의 모집, 회비의 징수 등에 관한 협의를 하였 다.
동년 5월 이래 각 지방의 부인 유지들에게 권유하여 지회를 조직하고 배일 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이를 통하여 군자금 2400여 원을 회원 및 동지들로부터 모집하였다. 이 가운데 2107원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부함으로써 독립운동을 원조하고, 나머지 돈 312원은 본회의 경비에 사용하였다.
1920년 10월 15일 송치되어 1921년 2월 24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소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2년 6월 17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20. 10. 7, 8, 14, 11. 7, 1921. 2. 27)·東亞日報(1921. 2. 27, 5. 28)
- 獨立新聞(1921. 2. 17)
- 新韓民報(1921. 4. 1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409, 433~437, 448, 961면
- 秘密結社 大韓愛國婦人會 檢擧의 건(1920. 11. 4)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6)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1권 分冊 462, 263면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956) 13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612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0권 863~864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