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한 박수남은 독학으로 소학교 수준의 학력을 갖추었다. 성년이 되자 불우한 자신의 환경과 현실의 모순을 느끼고 사회주의 문헌을 탐독하기 시작한 후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일심회(一心會)에 가입하였다.
일심회는 승려 백초월(白初月) 등이 주도한 독립운동 단체로 그가 일찍부터 주창하던 일심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심회는 민족사상을 고취시키고 한국 독립을 실현하기 위해 회원 모집에 나섰다.
박수남은 1937년 11월 서울 조선운송주식회사(朝鮮運送株式會社) 용산영업소 임시 인부로 근무하던 중 일심회에 가입하였다. 중일전쟁 이후 일본군의 중국전선이동이 증가하고, 한국인의 병력동원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일심회는 일본군 군용열차에 ‘조선독립만세’ 등을 대서키로 하였다.
1939년 10월 14일 용산역에서 이를 실행한 박수남은 동월 23일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1940년 7월 14일 소위 불경죄, 치안유지법 위반 등 갖은 죄명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중 병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決定書(京城地方法院:1940. 8. 30)
- 1939年 後半期 朝鮮思想運動槪況, 일본의 한국침략사료총서 (2)
- 韓國獨立運動史(문일민, 1965) 89면
-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일심교 검거에 관한 건(京高特秘 第1128號, 1940. 5. 4) 사상에 관한 정보(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