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남 강서(江西)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이래 강서군 일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락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박세환은 임시정부 연락원으로 강서군 일대를 순회하며 독립운동자간의 연락을 담당하였으나, 일경의 요주의인물로 올라 활동에 어려움이 따르자, 송성겸(宋聖謙)으로 하여금 1919년 여름 비밀단체인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 증산지회(甑山支會)를 설립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도록 하였다.
그는 모집된 군자금을 임시정부로 보내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1923년 4월 장춘경찰서(長春警察署)로부터 재류금지처분(在留禁止處分)을 받아 신의주경찰서(新義州警察署)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일경은 그로부터 아무런 혐의를 잡아내지 못하자 그를 석방시켰다.
그후 박세환은 중국 길림성(吉林省)으로 건너가 의성단(義成團)에 입단하였다. 의성단은 1923년 11월 편강렬(片康烈)·양기탁(梁起鐸) 등에 의해 길장선(吉長線) 근처의 가륜( 倫)에 근거지를 두고 조직된 군단이다. 나아가 의성단은 각지에 연락기관을 설치하였는데, 박세환은 이통현(伊通縣) 고유수(孤楡樹)의 책임자로 활동하며, 단원모집과 훈련에 힘을 쏟았다.
의성단은 '파괴'·'암살'을 주요 투쟁 방침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악독한 중국인 지주들에게 착취당하는 한인들의 지원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러므로 장춘(長春)에 있는 일본 영사관, 봉천(奉天)시내 만철병원(滿鐵病院) 등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이주한인들의 실력 양성을 위한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데 힘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의성단 초대 단장 편강렬이 1924년 7월 하얼빈에서 활동 중 일경에 붙잡히는 바람에 그 활동이 약화되었으나, 박세환은 승진(承震)의 뒤를 이어 3대 단장으로 선임되어 의성단을 이끌어 나갔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國外容疑朝鮮人名簿(總督府警務局) 266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5卷 653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65·260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5卷 309面
- 每日申報(1920. 11. 7)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462面
- 現代史資料(姜德相) 第27卷 531·53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43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