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신간회(新幹會) 성진지회와 성진청년동맹(城津靑年同盟)에서 활동하다가 1931년 5월 성진농민조합(城津農民組合)을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성진농민조합은 1931년 신간회 지부와 청년동맹이 해소된 뒤 이들 조직원을 기반으로 조직되었다. 조직 결성 이후 성진농민조합은 소작료 인하투쟁·채권문서 탈취 및 소각투쟁·스파이 징벌 투쟁·야학철폐 반대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성진농조에서는 조직을 관할하기 위해 1932년 1월에 농민조합본부임시통제위원회(農民組合本部臨時統制委員會)와 지도위원회(指導委員會) 같은 기구를 설치·운영하였는데, 이 조합은 하부 조직으로 7개 면에 14개 지부와 45개 반(班)을 설치하면서 조합원 2천여 명 규모의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서는 6, 7세의 어린아이들까지도 혁명가(革命歌)를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농조의 대중적 기반이 다져졌다.
이에 따라 일제는 무장 경찰을 동원하여 대규모의 탄압을 개시하여 700여 명의 조합원이 붙잡히고 이 가운데 150명이 검사국에 송환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이 때 박봉일은 성진농민조합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모진 고문을 받다가 1934년 재판을 앞두고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1932. 9. 14, 1933. 12. 3)
- 일제하농민조합운동연구(지수걸, 1993) 515∼51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258면
- 조선일보(1934.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