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0년 9월 말 서울 창신동에 사는 변호사 유완영(柳完永) 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인 정태유(鄭泰愈)를 만났다. 당시 정태유는 박기서의 조카사위 서재덕(徐載德)의 집에 잠복해 있었다.
12월경에는 조모의 친정인 서울 돈의동(敦義洞) 이종화(李鍾華) 집에서 나상필(羅相泌)과 만났다. 나상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이 부족함을 호소하고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금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낼 것을 권유했다. 이때 박기서는 ‘정말 좋은 계획’이라며 군자금 모집에 찬성하고 군자금 모집 방법에 대해 협의했다. 이들은 군자금 모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행 공채가 필요함을 공감했다. 이에 박기서는 서울 봉익동(鳳翼洞)에 사는 서재덕 집에서 정태유를 나상필에게 소개했다. 사나흘 뒤 정태유는 나상필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1,000원 공채증서를 교부했다.
이후 박기서는 충청남도 강경(江景)의 형 박춘서(朴春緖) 집에 요양하면서 나상필과 교류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채권 발행과 삼남지방을 대상으로 한 군자금 모집에 관해 지속적으로 협의했다.
박기서는 정태유, 나상필 등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됐다. 1921년 10월 28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직후 공소를 제기했으나 12월 2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기각됐다. 이후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2년 5월 31일 가출옥했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21. 10. 28)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8) 제36집 230, 244~245, 264~267, 494, 508, 526~5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