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노상렬은 강원 양양 출신으로 1921년 6월 전후 중국 길림성 훈춘(琿瑃)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3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하고 1925년 12월 귀국하여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1926년 1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한 후 3월 조선일보 광주지국 기자를 지내면서 고려공산청년회 전남 도(道)집행위원으로 당원 모집 및 조직 결성 등의 활동을 하였다. 6월 일본 경찰에 수배되어 가택수색을 당했으나 피신했다. 8월 고려공청 중앙총국과 고려공산청년동맹(서울파) 중앙위원회 합동위원회에 참석했다. 같은 달 통칭 '고려공청'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7년 3월경 체포되어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1923年 4月에 南烏 琿春地方의 槪況(陸軍省受領 密受 第234號 : 1923. 5. 10) 朝鮮軍參謀部發 朝特報에 관한 綴(1)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 성대경, 1996) 164면
- 不逞鮮人 名簿 送付의 件(機密公信第 36號 : 1921. 7. 1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8)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思想月報(朝鮮總督府 檢事局 : 1931. 7) 제1권 제4호 163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28.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