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9월 평안남도 대동군 시족면(柴足面) 대한독립청년단 조준묵 등이 국민향촌회(國民鄕村會)를 조직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군자금을 모집했다.
1920년 10월 13일 노관주는 김진준(金鎭俊)과 함께 시족면 건지리(乾芝里) 이명덕(李明德)의 집에 가서 그를 동쪽의 산중으로 데려갔다. 이때 김진준이 권총을 꺼내 위시하며 군자금으로 5,000원(円)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명덕은 250원(円)을 제공했다. 같은 곳에 사는 유관국(劉觀國)에게도 산중에서 2,000원(円)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후일 제공할 것을 엄포했다. 또한 유응팔(劉應八)에게도 800원(円)을 요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같은 해 10월 29일 노관주는 이명덕, 유관국을 다시 방문하여 이명덕에게 1,500원(円), 유관국에게 50원(円)을 제공받았다. 또 노승찬(盧承燦)에게도 20원(円)을 제공받았다.
노관주는 대한독립청년단원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됐다. 이후 1921년 7월 13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5. 13, 9. 8)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