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남 산청(山淸) 사람이다.
평소 일제 식민지 통치에 반대하여 민족 의식을 길러 오던 중 1931년 8월 26일 부산의 전영진(田永鎭) 집에서 박귀선(朴貴先)·이인형(李麟炯) 등과 함께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격문을 인쇄·배포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일본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혁명적 노동자가 선두에 서서 농민·소시민 등과 조직적 단결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이를 위해 일반의 의식을 각성하기 위해 등사판에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격문을 인쇄하여 노동자에게 배포·선전하다가 동년 9월 24일 일경에 붙잡혔다.
1931년 11월 14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여 1932년 3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출옥 후 그는 노동조합(勞動組合) 운동에 참가하여, 김상혁(金相赫)과 함께 전남 지방의 노동조합 건설에 힘을 쏟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32. 3. 22 대구복심법원)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동아일보(1933.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