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한태섭의 본은 청주(淸州)이며, 경상북도 예천(醴泉) 출신으로 아들 한양이(韓良履)와 함께 의병운동에 참여하였다.
1895년 10월에 일인들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明成皇后弑害) 사건이 일어나고, 12월 30일에는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졌다.
한태섭은 의병을 일으켜 일인들을 소탕하고 나라를 구하기로 결심하고 1896년 1월 문경(聞慶)에서 의진을 구성한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입대하여 참모관(參謀官)에 임명되었다.
동지 수백 명과 함께 달아나는 안동 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김인담(金仁覃) 등 3인을 생포하여 농암(籠巖)시장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이들의 매국 행상을 규탄하고 효수하였다.
1월 15일 문경 마고성(麻姑城)에서 적군과 접전하였으며, 2월 이후 유인석(柳麟錫) 연합의진에 편입되어 7월 해산될 때까지 충북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운동때도, 역시 이강년 의진에 소속되어 문경, 여주(驪州), 갈평(葛坪) 등지에서 적과 교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운강선생문집 1권 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권 298면
- 청주한씨양절공파보 5권 41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