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박병주는 1908년 함경남도 삼수군 별동면(別東面) 광생리(光生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3월부터 1923년 3월까지 사립보흥학교(私立普興學校)에서 수학했다. 1921년 천도교는 대대적인 포교운동을 전개했으며, 박병주도 광생리 천도교구실에서 입교했다. 1927년 갑산군 등에 천도교청년당이 결성되었다. 박병주는 그는 여기서 ‘야학’을 운영하며 청소년과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계몽활동을 펼쳤다.
1936년 5월 5일 중국 만주에서 조국광복회(祖國光復會)가 결성되었다. 조국광복회는 계급·성별·지위 등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반일 역량을 하나로 모아 반일민족통일전선 결성을 목표로 삼았다.
천도교와 조국광복회는 만주 장백현과 함경남도 갑산군 등에서 통일전선을 결성한 후 하부조직 결성 작업에 들어갔다. 조국광복회 광생리지회 조직 작업은 1937년 4월부터 시작되었다. 조국광복회 회원이었던 이례영(李禮泳)은 박병주를 찾아가 조국광복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독립운동에 공감한 박병주는 7월 조국광복회 광생리지회가 결성에 앞장섰으며, 선전부 책임을 맡았다. 조국광복회 광생리지회 회장 이례영은 17도구(道溝) 왕가동(王哥洞)에 갔다. 여기서 장백현 총책임 권창욱(權昌郁)과 최경화로부터 ‘생산유격대(生産遊擊隊)’ 조직 결성 방법을 지도받았다. 8월 이례영은 광생리로 돌아왔다. 박병주를 비롯하여 박병렬·박병기(朴秉基) 등을 중심으로 생산유격대를 결성했다. 광생리지회 산하에 여러 개의 분회도 조직되었다.
만주와 함경남도에 산재한 조국광복회 활동이 활발해지자, 일본 경찰들은 관련자 검거에 열을 올렸다. 광생리지회 간부였던 박병주도 무사할 수 없었다. 1938년 1월경에 체포된 그는 5월 12일 기소되었다. 1941년 8월 2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3년 7개월 동안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사상휘보(思想彙報)(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40. 12) 제25호 11면
- 조선통치사료(朝鮮統治史料)(김정주, 1970) 제6권 543~8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