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0월 북만주 길림성
1931년 11월경 중국공산당 한인지부 선전부 책임으로 활동하고, 동년 12월 상해한인반제동맹을 조직함. 1932년 1월 중국공산당 본부에서 활동하다 동년 3월 서울로 와 『코뮤니스트』 등 선전물을 인쇄, 배포하다 체포되어 징역 6년을 받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경상남도(慶尙南道) 마산부(馬山府) 출신으로 1924년 3월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였다. 서울과 마산에서 조선여자고학생상조회(朝鮮女子苦學生相助會)‧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마산청년회(馬山靑年會) 등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25년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8월 1일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고 마산 제1야체이카에 소속되었다. 10월 3일 권오설(權五卨)의 추천으로 중국 상해(上海)로 가서 고사찰(高四察) 등과 12월 중순경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예비과에 입학했다.
1927년 8월부터 중국공산청년단 상해 한인지부 조직부 겸 선전부 책임을 맡았다. 9월에는 민족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된 상해한인청년동맹에 참여하여 부인부 책임자가 되었다. 1928년 5월 중순 상해에서 대만공산당(臺灣共産黨) 결당대회에 여운형(呂運亨)과 함께 참석하였다. 같은 해 6월 17일에는 대만‧베트남‧필리핀‧인도 등 각 식민지 민족과 함께 동방피압박민족반제대동맹을 조직하여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국내 광주학생 항일운동의 소식을 듣고 1930년 1~2월 만주 아성현(阿城縣) 해구(海溝)로 가서 재만한인반일제국주의자동맹(在滿韓人反日帝國主義者同盟)을 조직하고 집행위원이 되어 출판계를 담당하였다. 이때 동맹의 기관지 『반일전선(反日戰線)』 을 발행하여 만주의 한인들에게 발송하였다. 같은 해 5월 12일에는 중국공산당 아성현위원회를 결성하여 부인부 책임을 맡았다.
1931년 5월 20일 상해로 돌아와 중국공산당 본부에서 활동했고 11월부터 중국공산당 한인지부 선전부 책임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2월 30일 상해 프랑스 조계지에서 민족 독립이 목적인 상해한인반제동맹(上海韓人反帝同盟)을 조직했다. 선전잡지와 운동자금을 가지고 1932년 3월 30일 서울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잡지를 인쇄 및 배포하는 등 활동하다가 1932년 5월 신의주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8월 14일 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고, 8월 27일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33년 5월 31일 예심이 종결되어, 12월 27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매일신보(每日申報)(1932. 8. 29, 1933. 2. 2, 9. 26, 11. 15, 12. 20, 1934. 2. 13)
- 동아일보(東亞日報)(1933. 2. 2)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 경찰부, 1934) 303면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4) 제3권 제10호 8면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4) 제3권 제11호 19∼33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15, 19~33, 67∼68면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