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남 북청(北靑)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같은 해 4월 만세운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함남 북청의 천도교 측이 계획한 군자금 모집활동에 참가하였다.
천도교측에서는 독립운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한인관리들의 포섭을 계획하였고, 이를 위해 전국 각처의 천도교 조직을 기반으로 30만원의 자금을 모집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이때 함경도 지역은 이기완(李岐完)이 담당하였고, 이기완의 책임 아래 함경도 지역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이원(利原)과 북청 지역은 이도재(李道在)가 맡기로 하였다.
김계식은 3월 10일 이도재로부터 그와 같은 소식을 접하고, 적극 동참하였다. 그리하여 김계식은 북청 천도교 초대 교구장 이유년(李有年), 조경항(趙敬恒) 등 10여 명의 인사와 함께 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일본 관헌에게 발각 붙잡혀, 5개월 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現代史資料(姜德相) 第25卷 419·420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714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137面
- 每日申報(1919. 9. 17)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701·70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