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황해도 은율(殷栗)사람으로 기독교(基督敎)인이다.
1919년 3월 26일의 은율읍 장날을 이용하여 오현식(吳賢植)·김경호(金京浩) 등과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인근면의 교인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몰래 얻은 독립선언서와 국민보(國民報)를 2백장씩 등사하고 태극기도 만들었다.
특히 국민보는 국민회의(國民會議) 명의로 발포되던 격문으로, 광무황제(光武皇帝)의 독살설과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3월 26일 정오, 그는 많은 장꾼이 모인 장소에서 독립선언서와 국민보를 배포하고,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주도하였다.
이때 군수 최병혁(崔炳赫)이 나와서 해산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시위군중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경찰주재소에서는 장연(長連)경찰주재소와 송화(松禾)헌병대의 증원을 요청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였다.
이 때문에 일제의 총검에 몇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는데, 이때 그의 어머니도 경찰의 칼에 머리를 찔려 중상을 입었다.
그는 그후 일제의 일제 검속때 체포되었으며, 이해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출판법 위반 혐의로 2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305·308·30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729·730·731면